정대면의 상태

언제
10/7/2020, 2:43:00 PM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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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디서
<결혼, 여름>, 알베르 카뮈
사람은 그저 몇 가지 익숙한 생각들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. 두 세 가지의 생각들을 가지고, 이리저리 떠돌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면서 그 생각들을 반들반들해지도록 닦아 지니거나 변모시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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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의 아름다운 얼굴과 어떤 식으로 낯이 익어지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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젊은 사람은 세계를 정면에다 놓고 바라본다. 그는 비록 죽음이나 무(無)의 끔찍한 맛을 씹어본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죽음과 무에 대한 관념을 윤이 나도록 다듬을 시간이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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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면에서 본다면 적어도, 흔히들 하는 말과는 반대로 젊은이에게 환상 따위는 없다. 환상을 만들어낼 시간도 경건함도 없다. 무슨 까닭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움푹 팬 풍경 앞에서, 음산하면서도 장엄한 이 돌의 비명소리 앞에서, 저물어가는 햇빛 속에서, 비인간적인 모습을 띠는 제밀라 앞에서, 희망과 색채의 이같은 죽음 앞에서, 나는 한 일생의 종말에 가서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는 인간이라면 그같은 정대면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서 그때까지 자기의 것이라고 지니고 있었던 몇 가지 안 되는 생각 따위는 부정해버리고 자신의 운명과 정면 대좌한 고대인들의 시선 속에서 빛나고 있는 저 무구(無垢)와 진실을 다시 찾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었다. 그들은 자기의 젊음을 회복하는 것이다.